졸업하면 지워지는 학폭 기록…"보존해야" vs "낙인 우려" [법안 스트리밍]

입력 2022-06-11 09:00   수정 2022-06-12 11:10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나서 올려다보지도 못하겠어"

지난해 6월 강원 양구에서 고등학생 A군은 이 같은 내용의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사이버폭력과 집단 따돌림 끝에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이다. 피해학생의 부모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청원을 올리면서 사건이 알려졌고, 학교 측에서 사망 직후 학교폭력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고 불리는 학교폭력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5년 총 1만9968건이었던 학교폭력 심의건수가 2019년에는 3만1130건으로 약 5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등교가 중단돼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괴롭힘은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갔고 사이버폭력 비중은 2019년 8.6%에서 지난해 9.8%로 늘었다. 학교 밖 폭력도 같은 기간 24.3%에서 40.6%로 급증했다.
학교폭력 기록 최장 10년까지 보존
이에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학교폭력 기록을 졸업 후 최장 10년까지 생활기록부에 보존하도록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학교폭력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학교폭력 기록 보존을 통해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현행법상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기록은 가해학생의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거나 졸업한 날부터 2년이 지난 후에 삭제된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르면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처분을 1호(서면사과)~10호(퇴학)로 두고 있는데, 1~3호와 7호(학급교체)는 졸업과 동시에 기록이 사라진다. 4~6호와 8호(전학)는 졸업 후 2년 뒤에 기록이 삭제되지만 전담기구의 심의에 따라 졸업과 동시에 삭제될 수 있다. 9호인 퇴학 처분은 삭제 미대상이다.

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학교폭력 기록을 최장 10년까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9호(퇴학)를 제외하고 가장 수위가 높은 7호(학급교체)와 8호(전학)를 받으면 졸업한 날부터 10년 동안 생활기록부에 관련 기록이 남는다. 5호(특별교육 이수 및 심리치료)와 6호(출석정지) 처분의 경우 기록 보존 기간을 기존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게끔 했다.

졸업 후 5~10년은 대학 진학과 취업 등이 이뤄지는 시기인 만큼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졸업 직전에 전담기구의 심의를 통해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예외조항도 삭제된다. 조 의원 측은 "자칫 힘 있는 집 자식들만 (예외조항의) 혜택을 볼 수 있다"며 해당 조항을 삭제한 이유를 밝혔다.

교육부도 지난해 12월 8호(전학) 처분에 한해 이 같은 예외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가해 행위의 심각성·고의성을 고려하여 전학 조치의 졸업 전 중간삭제 제도를 폐지하고 졸업 후 2년간 보존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 규칙의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교육계 "처벌 강화가 해답 아냐" 반발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처벌 강화가 학교폭력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며 일제히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근거로는 ①낙인찍기 우려 ②행정심판과 소송 및 민원 폭증 ③학교 업무 부담 증가를 들고 있다.

교원단체와 교원노조는 응보적(처벌적) 관점이 아닌 회복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처벌만 강화하면 가해 학생은 방어적이게 되고 결국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학교폭력 예방교육 및 가해 학생에 대한 치유·회복을 통한 재발 방지 등 교육적 해결책 모색과 연계되지 않은 처벌 위주(응보적)의 정책은 실효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학교폭력 기록을 보존한다고 해서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학교폭력은 예방이 중요한데 이러한 처벌 강화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전국의 시·도 교육청 역시 다음과 같이 반대 입장을 냈다.

"개정안과 같이 삭제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면 학생들이 충분하게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 가해학생이라는 낙인을 찍을 우려가 있음"(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세종, 경기, 충남, 경북, 전북, 전남 교육청)

"미성년 학생의 학교폭력 기록을 최장 10년간 보존하도록 하여 입시, 취업에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면 얻어지는 공익에 비해 학생의 진로 설계 및 사회 진출 방해 등으로 학생이 입게 되는 피해가 현저히 크다.

헌법에서 도출되는 직업의 자유 및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행정심판, 소송 및 민원이 증가되어 학교 현장의 혼란이 우려됨"(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세종, 경기, 충남, 경북, 전북, 전남 교육청)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마다 기록 관리 및 삭제 연도가 다르고 장기간 보존·관리하여야 함에 따라 학교업무 부담이 증가함"(충남, 부산, 광주, 경북, 대구, 전남 교육청)

교육부는 소년법 제32조 6항 "소년의 보호처분은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를 법안에 반대하는 근거로 들기도 했다. 학교 폭력 기록이 생활기록부에 장기간 남게 되면 대학입시나 취업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소년법에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조 의원은 소년법의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조 의원 측은 "반대 의견이 거세 법안의 통과가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최근 학교 폭력이 꾸준히 증가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소년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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